나의 이야기

[스크랩] 맛배기 사진으로 보는 3차 해외여행지~

아안나아 2008. 1. 31. 00:54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

세계 최소의 독립국인 바티칸시국을 향해 출발했다.

1시간쯤 달려 바티칸 성벽 가까이에 도착했다. 사람이 구름 떼처럼 몰려 있었다.

 

▲ 바티칸시국을 들어가기 위해 끝도 없이 줄을 서 있었다.
 

도로에 가득 들어찬 관광객들로 진통을 앓고 있었지만 경찰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우리는 바티칸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이태리 현지 가이드로부터 수신기를 지급 받았다.

그리고 성벽을 돌아가며 기다리는 동안 바티칸 박물관과 미켈란젤로 그림이 있는 시스티나성당,

성베드로대성당 설명을 미리 들었다.

 

2시간 30분 가량 기다렸을까? 까다로운 공항 입국 절차를 밟듯 물품과 우리는 검색대 위를 통과해

드디어 가톨릭의 총 본산인 바티칸 시국 성문을 들어갔다.

미리 설명을 들었건만 들어오니 어안이 벙벙이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로마 바티칸 박물관이었다.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서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이루어졌는데 l,400여개의 방들에 역대 교황들이 모은 수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또한 이곳 작품 대부분은 고대미술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유명한 레오나드로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등 3대 미술가들이 그리고 조각한 작품들이다.

 

▲ 미켈란젤로의 조각작품

 

▲ 미술관 바닥 섬세한 모자이크

 

▲ 천정은 그림, 벽은 카펫, 바닥엔 모자이크로 장식된 미술관

 

 

모자를 벗고 엄숙한 마음으로 들어선 곳은 성베드로 대성당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인 성베드로 대성당은 베드로 성인의 무덤이 있는 자리에 지어졌다.

반구형 돔으로 지어진 성베드로 대성당은 15세기에 교황 니콜라우스 5세가 카톨릭 총 본산으로

대변할 만한 성당을 건립할 계획을 세운 후 그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총력을 기울여

건립한 르네상스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다.

 

조각가인 미켈란젤로의 설계와 구상으로 시작, 120년간 공사를 하여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인정했던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완성되었다는 설명에 고개가 숙여진다

성베드로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미켈란젤로의 걸작 피에타 상이 보이고

돔의 오른쪽으로 청동제의 성 베드로 상이 있었다. 이 성베드로 동상의 발을 만지면서

기도를 하면 축복을 받는다는 말 때문에 동상의 발 부분만 유난히 반짝거리고 발가락 부분은 거의 달아 없었다.

 

▲ 성베드로 성인상
 

줄을 서야 발을 만질 수 있었지만 우리도 그 대열에 끼어

베드로 성인의 발을 잡고 기도를 했고 기념촬영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리고 원형 돔 한가운데 위치한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무릎을 꿇었다. 얼마나 보고 싶었던 곳인가!

감격과 환희 기쁨으로 충만 되었다.

베드로인 남편과 나는 두 손을 모으고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 성베드로성당 내부 

 

▲ 성베드로성당 예배당
 

 

다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그림으로 유명한 시스티나예배당을 찾았다.

시스티나예배당은 교황 선출시 추기경이 모여 선거하는 곳으로 유명한 예배당이다.

1512년 10월 31일 교황의 미사 후에 일반에게 처음으로 공개되었다고 한다.

바사리의 기록에 의하면, 그림이 공개되었을 때 온 세상 사람들이

미켈란젤로가 무슨 그림을 그렸는가를 보려고 달려왔고 상상을 초월한 그림을 보고는

할말을 잊은 채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 시스티나예배당 정면에 있는 최후의 심판

 

그림에는 경험이 많지 않았던 미켈란젤로에게 교황 율리우스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 벽화를 그리는 일을 맡겼다. 미켈란젤로는 1508년 계약을 체결했고

10년 동안 천장벽화의 프로그램을 짜고 설계하여 그림을 그렸는데 천장 밑에 받침대를 세워 그리는 과정에서

얼굴에 온갖 물감이 흘러내려 피부병이 생기고 몸은 휘어지고 항상 고개를 뒤로 제치고 그렸기 때문에 

고개가 굳어 목이 잘 굽혀지지 않는 고통을 이겨내며 그렸다고 한다.


미켈란젤로의 말년작
최후의 심판 그림은 시스티나성당 정면에 위치해 있고

왼쪽에 모세의 일생, 오른쪽에 그리스도의 일생이 그려져 있었다.

화가도 아닌 조각가 미켈란젤로 그림을 감상하며 살아 움직일 듯한 그림에 감탄, 또 감격이었다.

 

▲ 시스티나예배당의 화려한 그림들
 

기둥은 원형 대리석,

곳곳에 서있는 아름답고 섬세한 조각상,

발 아래 그림들은 모두 모자이크 작품,

천정엔 금방이라도 살아날 것 같은 미켈란젤로의 그림들.

벽은 은실 금실로 짠 성경이야기와 구름모양등 다양한 카펫들이 있었는데

특히 수백년 전에 짠 카펫이라는데 신기하게도 사람이 이동하는 각도를 따라오도록 짜여져있었다.

 

화려한 길을 따라 걷는데 마치 환상의 세계를 온 듯 했다. 

관람객이 들어가는 출입문부터 시작해 앞으로 나가면서 천장 가운데에 이르기까지 

창세기의 아홉 설화가 드라마틱하게 전개되어 사방팔방을 둘러봐도

어마어마하고 휘황찬란했는데 한번 보수하는데 무려 13년씩이나 걸린다고 한다.

 

로마바티칸 시국 면적은 0.44㎢. 인구 3만명 정도.

바티칸시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로마에 거주하는 추기경과

국무장관 또는 지사(知事)의 허가를 얻어 바티칸시국을 관리하는 교황청봉사자와 그 가족들이다.

때문에 이들은 이탈리아인과 스위스인들이 대부분이고 언어는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며

종교는 로마가톨릭을 믿는다. 오전 10시부터 입장 할 수 있고

오후 3시까지 구경이 가능한 곳이며 일요일은 휴관이다.

 

▲ 로마 바티칸 광장

 

▲ 로마바티칸 광장에 열두사도들은 사람 키 그대로 조각되었다.

 

 

베네치아 > 리알토 다리

 

 

 

 

-로마-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닉 (Dubrovnik)은 국가 최남서단, 몬테네그로 국경 가까이 위치한 중세도시이다.

예전에 두브로브닉 공국의 수도로서 베네체아공국과 세력을 나란히 했던 곳이기도하며,

아일랜드의 유명한 작가 조지 버나드 쇼우가 "지상의 낙원"이라고 극찬한 그런 곳이다.

실제로 몬테네그로 국경을 넘어 바다를 끼고있는 험준한 산고개를 내려올때 먼 아래 성벽으로 둘러쌓인

빨간 지붕들이 나타나는데, 푸르른 에메랄드빛 바다색과 어우러져 정말 이곳이 천국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부발칸 지역을 통틀어 가장 날씨가 좋은 아드리아해 연안에 위치해있어

1년 내내 따뜻한 기온에 푸른 하늘을 만끽할 수 있으며, 여름, 겨울 할것 없이

1년내내 관광객들로 붐비는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유명한 휴양도시이기도 하다.


몬테네그로 공화국에서 오는 길에 버스안에서 아슬아슬하게 찍은 시내 전경.
저기 보이는 성벽위를 소량의 입장료만 내면 한바퀴 걸어볼 수 있다.


성벽 위를 걷다보면 이런 붉은 지붕으로 덮인 집과 수많은 교회들을 만나게된다.


이탈리아 동부 연안까지 뻗은 아드리아해의 색이 이렇게 푸를수가 없다.


두브로브닉 요트항구. 저 멀리 몬테네그로 공화국지역 산들이 보인다.
이 해안은 기복이 심한 화강암 지형으로 바다 초입까지 산이 형성되어있다.


잠시나마 눈을 땔래야 땔 수가 없는 곳 - 두브로브닉

-플리츠비체 호수-
 
요즘 한국의 여행사들도 점점 이곳을 여행 코스중 일부로 넣는 것 같다.
하지만 벌써 유럽에서는 지중해 크루즈 여행때 꼭 들리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알려진 곳이다.
얼른 이 '아드리아해의 진주' (바이론 경)가 한국인에게도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우리는 3개의 코스중 C코스를 택하기로 했다.

 
각 폭포마닥 각개의 이름이 있는데, 도저히 알수가 없다. 좀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가능할듯 하다.


 


 


 








-오스트리아-
 
쇤브른성 

 

쇤브른성의 전경

 

 

글로리 에떼와 분수


 

여름궁전 쉔브른에 가다 어찌나 큰지 1441개의 방으로 이루어졌다니 가히 그 규모를 알수 있으리라.

아름다운 분수를 뜻한다는 쉔브른은 합스브르크 왕가의 여름별궁이다 

 

바로크양식의 대표적인 궁전으로 원래는 베르사이유 보다 더 크고 화려하게 지으려 했으나

그 당시 전쟁과 전염병인 페스트로 국고가 모자라 이정도로 지었다고 하며

마리아 떼레지아여왕 때 증죽 되었다고 한다.

 

질서정연한 정원의 조경과 분수인지 그리스식 조각품 전시장인지 알수 없을것 같은 분수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적 기념비 중 하나로,

원래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별궁으로 사용했다 한다


황제 프란츠 요셉(1840~1916 통치)이 1830년 이 궁전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마지막

여생을 이곳에서 보냈으며 '1996년에는 궁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1696년 레오폴드 1세가 바르코 건축의 거장 피셔 폰 에를라하에게 명령하여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에 맞서는 원대한 별궁 조경계획을 세우게 했고,

다시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때인 1744년에서 1750년까지 진행되어

니콜라스 파카시의 손에 의해 완성되었다.

 

 

쉔브른 정원은 프랑스 스타일의 가장 중요한 바로크 식 정원으로 500에이커(2백만여 평방미터)가 된다

공원은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때(1740~1780) 원예 디자이너인 니콜라우스 자도트와

아드리안 폰 스텍호벤이 조성하였다.


1775년과 1780년에는 건축가 히첸도르프 폰 호헨베르크에 의해 프러시아와 싸워 이긴 것을 기념해

세운 그리스 식 건축물 글로리에테(Gloriette, 작은 영광 )를 비롯하여

로마 유적, 넵튠 분수상 등 3개의 가장 야심적인 건축물들이 공원에 세워졌다.

 

그리고 드넓은 땅에 우거진 나무숲도 장관이었다. 짧은 시간에 이곳 저곳을 둘러 보려니

 

시간이 모자라 내부는 건성으로 보고 나온것 같다. 순금으로 도배를 한방 ,

그냥 도배가 아니라 온갖 아름다운 무늬의 조각들이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었으며

마리아떼레지아의 황금자수로 수 놓아진 침대라던가 그시절  왕가의 집기와

아름다운 이름이 붙은 여러 방들을 둘러보 면서 합스브르크 왕가의 위세를 알 것도  같았다.


그녀 마리아떼레지아 여왕은 아이를 16명인가 낳았다고 하니....

거의 20여년 가까이 배가 불러 있엇으리라 그리고 유럽 여러 나라들과 얽히고 설킨 혼맥으로

야심에 찼던 황실의 야망과 위세를 느꼈다.

 

참고로 합스브르크 왕가의 혼맥은 유럽전역에 퍼져 있었으며 

 유명한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뚜와네뜨는 그녀의 막내딸이다.

 

이곳을 여행하면서 오스트리아 합스브그크왕가 이야기는 빠질수가 없고

유럽 어디를 가도 오스트리아 합스브르크왕가를 빼놓고 역사이야기를 하기가 힘들만큼

대단한 권력을 갖었던 왕조라 할수 있겠다 .

 

어딜 가나 화장실이 급선무

돈내지 않고 가는 곳이라면 무조건 가야하는 것이 유럽여행의 또 다른 규칙같다.

                                

 

 

글로리에떼의 전경과 가까이 본 모습

 

쉔부른 궁전
쉔부른 궁전

 

 

-헝가리-

 

수도인 부다페스트는 도나우(다뉴브)강을 중심으로  서쪽은 부다 동쪽은 페스트로 나뉜다.도심은 13세기 이후에  대부분 사암으로 건축된 건물들로 오랜 세월 동안 암석에 스민 검은 타르가 그대로 배어있는 검은 회색의 중세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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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뉴브(도나우)강과 부다페스트의 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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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겔레르트 언덕에서 바라본 왕궁과 부다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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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의사당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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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부의 요새

  

어부의 요새

 

 

세체니 온천

 

 온천의 왕국, 헝가리에서 즐기는 온천여행

부다페스트의 거리를 걷다가 보면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건물을 볼 수가 있는데, 따뜻한 연기가 새어 나오는 이곳은 다름아닌 온천의 왕국이라 불리는 헝가리의 온천으로 전국적으로 135개가 있다. 그 중 부다페스트에만 100여개의 온천이 있는데 온천마다 각기 다른 특색과 효능을 발휘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온천과 비교했을 때, 이곳의 온천은 비교적 뜨겁지 않으며 풍부한 미네랄이 포함되어 있다. 또 최근에 건설된 것도 있지만 20세기 초에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도 있어서 특이한 분위기에서 온천을 즐길 수도 있다. 또 이곳 시민들은 우리가 목용탕을 이용하듯 일상속에서 온천을 즐기고 있는데, 한 여름에도 실외의 풀장 형식으로 지어진 탕에서 온천을 즐긴다고 한다.

출처 : 54년 말띠
글쓴이 : 구르는~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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